닥터 휴의 노트

성형외과 의사인 제가 다시 흉터를 공부하는 이유

글 닥터 휴 (성형외과 전문의) · 2026년 10월 23일

제비뽑기로 시작된 인턴 1년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제가 의과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대부분 전공을 정해 전문의 과정을 밟았어요. 졸업 후 첫 1년은 ’인턴’으로 수련을 시작하는데, 아직 과를 정하기 전이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여러 과를 돌며 경험하게 돼요.

인턴을 시작하기 전에 수련회 같은 자리에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제비뽑기로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의 스케줄이 정해졌어요. 요즘 같으면 컴퓨터 화면에 다 나왔겠지만, 그때는 정말로 스케줄이 하나하나 적힌 종이 제비를 뽑았답니다.

누가 어느 과에 간다더라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네요. 인턴 생활의 끝이 슬슬 보일 무렵이면 전공할 과를 정해 레지던트로 지원하게 돼요. 사실 그 전부터 마음속으로 원하는 과를 정해두는 경우가 많아요.

지원자가 많은 과는 덜하지만, 레지던트 정원이 적은 과에서는 누가 지원한다더라 하는 소문이 일찍부터 돌기 마련이에요. 너무 늦게까지 지원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그 과에 별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저는 인턴 8월쯤 선배들에게 성형외과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게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었어요.

거창한 포부 대신, 다섯 살의 기억

그렇다면 저는 왜 성형외과를 택했을까요? 당시 교수님과 선배들 앞에서는 거창한 이유와 포부를 이야기하곤 했지만, 돌아보면 그보다 훨씬 개인적인 이유들이 있었어요.

제가 성형외과라는 과를 처음 만난 건 다섯 살 무렵이에요. 부모님이 저와 동생을 외가에 맡기고 여행을 가셨던 때였는데, 외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고 어딘가 가다가 오른발이 뒷바퀴에 말려 들어가는 사고가 났어요. 동네 정형외과에서 소독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부모님이 보시기에 소독만으로 끝날 상처가 아니었나 봐요.

그래서 대학병원을 찾았고, 마침 아버지 친구분이 그 병원 성형외과에 계셔서 피부 이식을 비롯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너무 어릴 때라 자세한 기억은 없어요. 다만 처음 다쳤을 때 차가 다니는 어느 다리 위에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당황하시던 외할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피부 이식한 자리의 실을 뽑으러 외래에 갔을 때의 따끔따끔한 느낌만은 어렴풋한 향기처럼 남아 있어요.

상처를 정성껏 꿰매는 사람들

그 뒤로 성형외과라는 이름이 마음 한쪽에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학생 실습과 인턴을 거치며 성형외과를 직접 경험해 보니, 상처 하나도 예쁘게 봉합하려고 애쓰고 끝까지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하고, 거창함과는 거리가 먼 이유라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게 제 시작이었어요.

개원가에서 보낸 시간

레지던트 4년을 마치고 이런저런 길을 거쳐 미용성형 개원가에 나오게 되었어요. 여러 수술을 하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기도 했고, 다양한 환자분들, 어쩌면 고객분들이라고 해야 할 분들을 만나며 많은 경험을 했어요.

수술 후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제 마음도 함께 기뻤고, 원치 않는 부작용으로 힘들어하실 때면 저 또한 함께 걱정하고 마음 아파했던 시간들이었어요.

다시, 흉터로

그러다 문득 제가 처음 왜 성형외과를 전공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때 떠오른 것이 흉터 치료였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흉터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있어요.

물론 성형외과 의사라면 누구나 수술 후 흉터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그에 맞춰 수술하도록 배워요. 흉터 치료에 대해서도 수련 기간 동안 상당한 지식을 쌓고요.

그렇지만 여기에 더 관심을 갖고 깊이 들여다본다면 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다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하나씩 기록해 보려고 해요.